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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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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應, 䧹)은 중국 주나라 시대의 제후국이다. 주나라 왕실과 동성으로, 주 무왕의 자손에게 봉해졌다고 전해진다. 봉지는 지금의 허난성 핑딩산 시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초나라에 멸망했다.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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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래문헌에는 단편적인 기록으로만 응나라의 존재가 전해진다. 《춘추좌씨전》 희공 24년조에

우(邘) · 진(晉) · 응 · 한(韓) 네 나라는 무왕의 목(穆)이며

[1]

이라 하여, 응나라의 시조는 실제로 주 무왕의 아들로 주 성왕의 동생인 당숙 우를 시조로 삼는 것이 알려진 진나라와, 시조가 알려지지 않은 한나라 · 우나라와 함께 무왕의 자손으로 주나라 초기에 봉해졌음을 알 수 있다. 《한서》 지리지 영천군 항목에서 “부성현, 응향이 있는데, 옛 나라로, 주 무왕의 아우가 봉해졌다.”라는 기록이 있고,[2] 이외 수경주 등의 기록을 통해 옛 응나라의 터는 지금의 허난성 핑딩산 시 인근에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응후와 관련된 청동기 명문이 세상에 나오면서 응나라의 실존이 명백해졌고,[3] 1970년대에 핑딩산 시 서쪽 약 20 km 떨어진 지역에서 응나라 관련 청동기가 부장된 묘지가 발견되었다.[4] 발굴 보고에서는 이 무덤의 부장품들 중 서주 초기의 것이 있다고 했으나, 김정열은 유의미한 유물들의 연대를 모두 서주 중기 초입부로 추정하고 이에 따라 응후가 핑딩산 시 근방에 봉해진 것이 이때라고 추정했다.[3]

역대 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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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비고
무후(武侯) 응후 시공의 아버지
시공(視工) 금석문을 읽기에 따라 휘를 견공(見工)으로 보기도 한다.
초기에는 주 공왕 · 의왕 시대 인물로 추정되었으나,
여왕 시대의 인물로 보는 관점이 유력해지고 있다.[5]
희공(釐公) 응후 칭의 아버지
(稱)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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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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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태현: 《역주 춘추좌씨전》 2권, 184쪽, 전통문화연구회, ISBN 9788985395892
  2. 반고: 《한서》 권28상 지리지 제8상 중국어 위키문헌에 이 글과 관련된 원문이 있습니다. 한서 권28상 지리지 제8상
  3. 김정열: 《평정산 유적과 서주시대의 응후》, 중국사학회, 제78회 학술발표회, 2013. 6. 8. 1 ~ 14
  4. 심재훈: 《서주 청동예기를 통해 본 중심과 주변, 그 정치 문화적 함의》, 동양학, 제51집, 2012년 2월, 49 ~ 84
  5. 심재훈: 《응후 시공 청동기들의 연대 및 그 명문의 연독 문제》, 중국고중세사연구, 제28집, 1 ~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