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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토레 푸리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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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토레 푸리첼리
1941년의 푸리첼리
개인 정보
본명 Héctor Puricelli
출생일 1916년 9월 15일
출생지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사망일 2001년 5월 14일(2001-05-14)(84세)
사망지 이탈리아 로마
포지션 은퇴 (과거 스트라이커)
구단 기록*
연도 구단 출전 (득점)
1935–1936
1936–1938
1938–1944
1944–1949
1949–1951
합계:
리버 플레이트 몬테비데오
센트랄 에스파뇰
볼로냐
밀란
레냐노
0
0
139 0(87)
114 0(55)
038 0(25)
291 (167)
국가대표팀 기록
1939 이탈리아 001 00(1)
지도자 기록
1954–1956
1956–1957
1960–1961
1965–1966
1966
1967–1968
1969–1971
1973–1975
1978–1979
1980–1981
밀란
팔레르모
살레르니타나
아탈란타
알레산드리아
칼리아리
비첸차
비첸차
제노아
포자
* 구단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정규 리그의 공식 리그 경기 기록만 집계함.

엑토르 "에토레" 푸리첼리(이탈리아어: Héctor "Ettore" Puricelli ˈɛttore puriˈtʃɛlli[*]; 1916년 9월 15일, 몬테비데오 주 몬테비데오 ~ 2001년 5월 14일, 라치오 주 로마)는 우루과이 태생의 이탈리아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현역 시절 스트라이커로 활약했다. 우루과이 출신으로, 그는 국가대항전에서 이탈리아를 대표로 출전했다. 그는 선수 시절, 이탈리아의 볼로냐밀란에서 활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 골 결정력이 뛰어난 선수로, 그는 공중 경합력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금빛 소두"(testina d'oro)라는 별칭이 붙었다.[2]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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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몬테비데오의 센트랄 에스파뇰에서 활약하던 푸리첼리는 1938년에 우루과이에서 이탈리아로 건너가기로 결정하고, 세리에 A볼로냐에 입단했다. 볼로냐는 당시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푸리첼리를 영입하며 날개를 달았다. 푸리첼리의 1년차에 볼로냐는 1938-39 시즌 리그 우승을 거두었다.

푸리첼리는 이탈리아 무대 1년차에 밀란알도 보피와 함께 공동 득점왕(capcannoniere)에 등극했다. 그는 1940-41 시즌에도 22골을 기록하며 한 번 더 득점왕에 올랐고, 같은 해 볼로냐의 리그 우승에도 일조했다.[3]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푸리첼리는 밀란으로 이적하였고, 이후에도 득점 행진을 무난히 이어나갔지만, 리그 정상에 오르지는 못했다. 밀란이 이 시기 리그 우승에 가장 근접했던 때는 1947-48 시즌으로 당시 주장을 역임하며 리그를 준우승으로 마쳤다. 그는 세리에 B레냐노에서 말년을 보냈는데, 이 당시에도 아직 득점력이 살아있었다.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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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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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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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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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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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nciclopedia Del Calcio 보관됨 2008-03-19 - 웨이백 머신
  2. Furio Zara (2018년 5월 15일). “Pavoletti e i grandi specialisti di testa dell'Italia e del mondo” (이탈리아어). www.calciomercato.com. 2019년 5월 1일에 확인함. 
  3. Roberto Di Maggio; Igor Kramarsic; Alberto Novello (2015년 6월 11일). “Italy - Serie A Top Scorers”. 《RSSSF》. 2015년 10월 31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5년 12월 2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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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주세페 안토니니
밀란 주장
1948
다음
 안드레아 보노미